녀석이 조용히 나를 따라온다. 충동적으로 움직이고 나서야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취기 때문에 내가 유독 뜨거워서인지 손에 잡힌 관린의 온도가 서늘했다. 그 서늘함이 좋았다. 불거진 뼈마디며 그와 대비되는 부드러운 피부까지 좋았다. 전부 반가웠다. 좋았다. 반갑다 로 시작한 것이 좋다 로 점차 옮겨진다. 반갑다는 마음과 어딘지 서글픈 감정과 좋다는 ...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나를 위로하려고 해준 말이었다. 학교 선생님을 짝사랑한다니, 웃어넘길 만도 한데 역시 누나의 친구답게 상냥했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은 가족들과 누나네 대학 투어 비슷한 것을 했는데 다음날은 굳이 나만 따로 불러낸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친한 게이 친구에게 나를 소개시켰다. 생색도 예고도 없이 그 자리를 만들어낸 것이 너무 누나다워서 ...
저 멀리서부터 알아볼 수 있었다. 키가 아니라 존재감 때문이었다. 생일날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산책 겸 길거리 쇼핑을 하고 있을 때, 주말의 많은 인파 속에서도 녀석은 한눈에 들어왔다. 왠지 눈가가 발개진 채로 웃는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여자애들과 대휘에게 둘러싸여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얼굴 하나만큼 크게 솟은 녀석을 보고 이상할 만큼 반가워서 ...
짝사랑은 독백극이다. 사소한 것에도 과장되게 설레고 슬퍼진다. 조금 광기어린 상상과 혼잣말이 늘어간다. 하지만 나의 모노드라마에는 관객이 없다. 이 감정 앞에서 나는 혼자다. 아무도 없는 극장에 혼자 들어가서 마음껏 공연을 펼친 후에, 나는 다시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온다. 그런 식의 매일이었다. 그가 종료를 선언한 이상, 내게는 더 이상 감정을 표현할 이유...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놀랐다. 그 얼굴과 목소리는 열여덟 짜리 남자아이가 품을 깊이가 아니었다. 유리벽 위에 길게 뻗어진 손가락 너머 설명하기 힘든 그 얼굴을 보고서야, 녀석에게서 그런 얼굴을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더욱이 미안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관린에게 말한 대로 동성의 연애 감정이 낯선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친한 ...
첫 연애는 실패였다. 고백을 들어서 들뜬 마음에 시작해 버렸다는 점이 첫 번째 패인이었고 그 취기 같은 감정 때문에 속도를 모르고 질주한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매력적인 사람이었지만 역시 좋아했던 것 같진 않다. 그냥 고백, 스킨십이나 이벤트 기념 등, 연애에서 으레 하는 의식(儀式)을 나도 경험한다는 사실에 신났었다. 사실은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좋아한...
키가 크다. 키 큰 사람의 첫인상이 키 크다 면 언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선 실격이 아니냐고 여자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녀석을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은 크다 가 먼저였다. 아니 단순히 신장이 크다는 게 아니라 뭔가 달라. 변명하듯 덧붙인 내 말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그 아이에 대한 첫인상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실패한다면 언어 교사로서 실격인 ...
오랜 시간을 함께한 건 아니지만 가까이에서 본 박지훈은 사실 귀여운 사람이 아니다. 물론 방송에서 윙크나 애교를 할 때의 박지훈은 귀엽다. 반면 오프의 박지훈은 말수 적고 고집 있고 우직하고 성실한, 딱 상남자다. 얼굴은 타고나야 한다. 하지만 타고난 얼굴을 잘 쓰는 건 노력과 능력이다. 녀석의 귀여운 얼굴은 본성이라기보다 직업정신처럼 느껴졌다. 일기니까 ...
나는 모험을 싫어하는 편이다. 안전하고 평범하고 심심한 것을 좋아했고 항상 그 쪽을 택했다. 남들이 한다면 했고 안 한다면 굳이 하지 않았다. 그랬다. 모든 것은 굳이 였다.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닌데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랬으니 하지 말아야만 할 것에는 오죽했을까. 대단히 칭찬 받은 적은 없어도 그럭저럭 좋은 아이, 나름대로 재밌는 아이, 못하다 ...
야자타임이라는 말은 기획사 형들에게 처음 배웠다. 한국말을 거의 못했을 때다. 종일 연습만 하면서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세 단어만 했었다. 그나마 영어를 잘하는 직원들과 연습생들이 있어서 어찌어찌 버텼지만 역시 힘들었다. 몇 달 차이만 나는데도 꼬박꼬박 높임말을 해야 하고 고개를 구십 도로 꺾어야 하는 한국 문화에도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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